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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페인 독감 시기의 한국, 그때는 어땠을까?

Avenue 2025. 2. 15. 13:27

1918년부터 1920년까지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(Spanish Flu)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였습니다. 약 5억 명이 감염되고 5,0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남겼습니다.

그렇다면 스페인 독감 시기의 한국(당시 조선)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? 오늘은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조선의 스페인 독감 유행과 그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.

스페인 독감 시기의 한국, 그때는 어땠을까?


🦠 스페인 독감, 어떻게 시작되었나?

✔️ 1918년 초 미국에서 발생하여 유럽과 아시아로 빠르게 확산
✔️ 당시 1차 세계대전(1914~1918) 중이라 병사들과 함께 전 세계로 퍼짐
✔️ 2차 감염(1919년 말~1920년 초)이 더 치명적이었음
✔️ 전 세계 사망자: 최소 5,000만 명, 일부 추정치는 1억 명

📌 조선에서는 1918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유행이 시작됨


📍 스페인 독감의 조선 유입과 확산

당시 조선(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에 병합됨)은 일제강점기였으며, 일본을 통해 많은 전염병이 유입되었습니다.

1918년 9~10월: 일본에서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
1918년 10월 중순: 조선에서도 첫 감염 사례 발생
1918년 11~12월: 서울, 평양,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유행
1919년 1월~1920년 초: 2차 대유행이 더 강하게 나타남

📌 당시 조선 인구: 약 1,700만 명 → 감염자 약 740만 명(43%)
📌 사망자: 약 14만 명(치명률 약 2%)

⚠️ 특징적인 점
✔️ 감염률이 매우 높아 조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감염
✔️ 대도시뿐만 아니라 농촌까지 빠르게 퍼짐
✔️ 2차 유행이 더 치명적이었으며, 특히 20~40대 건강한 성인들이 많이 사망


🚨 당시 조선의 대응 상황

1️⃣ 열악한 의료 시스템 🏥

1910년대 조선은 일본의 식민 통치 아래 의료 인프라가 극도로 열악했습니다.

🔹 서양식 병원이 거의 없었고, 한의원과 민간요법에 의존
🔹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는 병원도 극소수에 불과
🔹 대부분의 조선인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웠음

📌 1918년 당시 병원 통계
✔️ 병원 수: 약 130개 (대부분 일본인이 운영)
✔️ 의사 수: 약 800명 (조선인은 200명 미만)


2️⃣ 백신·치료제 없음 🚫

✔️ 스페인 독감은 바이러스성 질환이었지만, 당시에는 바이러스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음
✔️ 백신이나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없어 대증치료(증상 완화)만 가능
✔️ 전통적인 민간요법(한약, 부적, 뜸 등)에 의존하는 경우 많았음


3️⃣ 일제의 소극적인 방역 🚷

일본은 조선을 경제적·군사적 식민지로만 여겼기 때문에, 적극적인 방역 대책을 세우지 않았음.

🔹 조선총독부는 감염병 대응에 큰 관심이 없었음
🔹 위생시설 부족 (하수도, 상수도, 공공보건 시스템 미비)
🔹 공장과 노동 현장에서 방역이 거의 이뤄지지 않음

📌 일본 본토에서는 적극적인 방역을 시행했지만, 조선에서는 방치에 가까운 상황


4️⃣ 일상생활과 경제적 타격 💰

스페인 독감은 조선 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.

학교, 시장 폐쇄
교통 마비(기차, 전차 등 운행 차질)
공장 노동자 대량 감염 → 생산성 저하
농촌에서도 감염 확산 → 식량 생산 차질

📌 당시 신문 기사:
"가족이 감염되면 온 마을이 무너진다."
"아픈 사람을 돌볼 사람이 없어, 집집마다 비극이 이어진다."

📌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의료 시설이 거의 없어 사망자가 폭증


🔎 스페인 독감이 남긴 영향

1️⃣ 공중보건의 중요성 인식 📢

🔹 조선 사회에서 처음으로 감염병 예방의 필요성이 인식됨
🔹 이후 일부 서양식 의료 시설이 늘어나기 시작

2️⃣ 한국 의료 발전의 계기 🏥

🔹 스페인 독감을 계기로 서양식 의학(전염병학, 예방의학)이 주목받음
🔹 1920년대 이후 서양식 병원이 조금씩 증가

3️⃣ 조선인의 피해 극대화 → 반일 감정 고조 ⚡

🔹 일본 정부가 조선 내 감염병 확산을 방치하면서 조선인들의 불만이 커짐
🔹 이 시기(1919년) 3·1 운동이 발생하면서 조선인들의 독립 의식이 강해지는 계기가 됨


📝 스페인 독감 시기의 한국 관련 Q&A

Q1. 스페인 독감이 조선에서만 심각했던 이유는?
👉 의료 시설 부족, 위생 상태 열악, 방역 정책 미흡 때문.

Q2. 당시 조선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나요?
👉 한약, 뜸, 민간요법 등을 사용했고, 일부 부유층만 서양 의술을 받음.

Q3. 일본은 방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나요?
👉 일본 본토에서는 나름대로 방역 조치를 했지만, 조선에서는 소극적 대응.

Q4. 스페인 독감 이후 조선의 의료 환경이 개선되었나요?
👉 이후 일부 서양식 병원이 늘어나긴 했지만, 여전히 일본 중심의 의료 체계였음.

Q5. 스페인 독감이 조선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나요?
👉 조선인들의 피해가 극심했고, 1919년 3·1 운동과 시기가 겹쳐 일본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계기가 됨.


🔖 결론: 조선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남긴 스페인 독감

🔹 조선 인구의 약 43% 감염, 약 14만 명 사망
🔹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거 희생
🔹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조선인의 피해가 더 커짐
🔹 감염병 예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는 계기가 됨

📌 오늘날 코로나19와 비교하면?
✔️ 100년 전에는 백신과 치료제가 없었음
✔️ 방역 시스템도 거의 없었음
✔️ 감염병 대응이 개인 책임에 맡겨졌음

역사는 반복됩니다. 과거의 교훈을 통해 더 나은 방역 시스템과 의료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죠! 😊